사막으로 광어회 600인분 실어나른 '의리왕'

입력 2023-07-21 18:46   수정 2023-07-22 02:18


‘구조조정의 마술사’ ‘다이너마이트 주니어’ ‘의리왕(王)’ ‘상남자 회장님’ ‘한화의 아버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71)에게 따라붙는 별칭이다. 이 별명의 기반이 되는 신념은 ‘신용과 의리’다. 그의 삶과 경영 철학을 가장 잘 요약해주는 두 단어다.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김 회장은 다른 기업 오너들과 다르게 독특한 행보로 경영계에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김 회장의 성격은 부친인 김종희 한화 창업회장의 교육에서 비롯됐다. 호방한 성격의 김 창업회장은 평소 장남인 김 회장에게 호연지기를 강조했다. “남자가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며 단맛 쓴맛 다 봐야 한다”며 “나중에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쓸데없는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상남자’로 일컬어지는 ‘김승연 스타일’은 이 같은 가풍에 따라 어린 시절부터 형성됐다.

그는 부친이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하며 1981년 스물아홉 나이에 회장 자리에 올랐다. 김 회장은 우선 외모에서 관록을 보이기 위해 헤어 스타일을 ‘올백’(머리카락을 모두 뒤로 넘긴 형태)으로 바꿨다. 아버지를 모신 그룹 중역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군기도 엄하게 잡았다고 한다. ‘이립(而立)’을 앞둔 청년 회장이 택한 생존 방식은 카리스마를 내세운 ‘보스 경영’이었다.

그러면서도 꽃을 선물하는 섬세한 면모를 갖췄다. 2018년 한화이글스가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 11년 만에 진출했을 때였다. 대전구장을 방문한 ‘야구광’ 김 회장은 3000여 명의 관중에게 장미꽃 한 송이와 감사 카드를 돌렸다. 1차 누리호 발사에 실패했을 때도 개발에 참여한 임직원에게 꽃과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신의’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김 회장은 주변인과 직원들을 가족처럼 아끼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원들은 이런 김 회장을 ‘한화의 아버지’라고 스스럼없이 부른다. 재계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기업 오너는 통상 ‘연예인’처럼 먼 존재로 인식되기 마련인데, 김 회장은 이와 다른 이미지”라고 말했다. 실제로 만나면 다정다감하고 위트가 있다는 게 그를 아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전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화에너지 정유 부문을 매각하며 20억~30억원 더 싸게 넘기는 대신 고용 승계를 약속받은 게 대표적 사례다. 2010년엔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을 6개월간 리모델링할 때 600여 명 직원 모두를 4개월간 유급 휴직 처리해 화제가 됐다. 2014년엔 이라크에서 근무하는 한화건설 직원을 위해 광어회 600인분을 서울에서 공수해 나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에게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1980년대 아버지상(像)을 찾는 이도 있다.

한화는 김 회장 취임 이후 수십 건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며 성장해왔다. 주로 재정난에 허덕이던 기업을 인수한 터라 인수 과정에서 반대가 극심했던 게 공통점이다. 하지만 김 회장이 적기에 인수한 이들 회사는 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자리잡았다. 2014년엔 삼성의 방산, 화학 계열사 네 곳을 인수하는 ‘빅딜’을 통해 방산과 에너지 분야에서 국내 톱 기업으로 거듭났다. 최근엔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며 M&A 역사를 새로 썼다.

김 회장은 끽연가이자 애주가였다. “내가 마신 술이 유조선으로 5~6척은 될 것”이라고 농담할 정도다. 담배도 하루에 한두 갑은 너끈히 피웠다. 하지만 지금은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술은 끊었다고 한다. 저녁 자리의 주종(酒種)이 와인이면 포도주스를, 맥주면 보리차 등 색이 비슷한 음료를 따라놓고 함께 건배한다. 김 회장은 1주일에 두어 차례 서울 장교동 본사에 나와 주요 사안을 결정하고 서류를 결재한다.

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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